카카오 김범수 프로필 한국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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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부자 1위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한국 부자 1위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흙수저' 김범수 한국 최고 부자 됐다. 카카오 金의장 순자산 15조
    이재용 부회장 뛰어넘었다. 주가 상승 영향 흙수저 출신 맨손 창업 IT기업인이 재벌가 제쳤다.

    김범수의 카카오

    카카오의 설립자이자 이사회 의장인 김범수씨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제치고 한국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압도적 한국 재계에서 맨손으로 창업 신화를 창조한 김범수 회장과 김범수 회장의 자산은 올해 60억 달러 이상 증가해 한국 부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자수성가한 IT 사업가가 수십 년 동안 한국 경제를 지배했던 대기업 총수를 구타한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BBI는 블룸버그가 세계 500대 표지판을 선정하여 발표하는 일간 지수입니다. 전 세계 주요 부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 주식, 부채 등의 자산 변화를 정리하고 순위를 매깁니다.

    7월 30일 기준으로

    김범수 회장의 순자산은 135억 달러(약 15조 5100억 원)로 이재용 부회장의 123억 달러(약 14조 1300억 원)를 웃돌았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세계 162위와 182위의 부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날 현재 상장사 지분 가치만 놓고 보면 김범수 회장이 이재용 부회장을 추월했습니다.
    김범수 회장의 상장사 지분은 15조6083억 원으로 이 부회장의 15조3946억 원보다 2137억 원 더 많습니다.

    김범수 의장은 흙수저 출신의 자수성가한 기업인

    1. 서울대 산업공학과 86학번으로 입학한 김범수 의장은 과외를 하며 학비를 마련했다.
    2. 서울대 산업공학과 학업을 마친 뒤 삼성 데이터 시스템(삼성 SDS 전신)에 입사했다.
    3. 1998년 삼성 SDS에 사표를 내고 한게임을 창업했다.
    4. 2000년에는 삼성 SDS 동기였던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의 네이버와 한게임을 합병해 NHN 공동대표가 됐다.
    5. NHN을 나온 후 다시 창업에 도전해 2010년 모바일 메신저 프로그램인 '카카오톡'을 출시했다.
    6. 카카오는 모바일 메신저를 넘어 결제, 금융, 게임, 차량 호출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해 100조 원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카카오 100조 시총 기준 국내 5대 그룹으로 올랐다.

    • 카카오·카겜·넵튠 73조에 다음 주 상장하는 카뱅이 39조
    • 칭기즈칸 식 신사업 속도전 10년 만에 계열사 100개 넘어

    카카오 이사회 의장(김범수) / 金範洙| Kim Beom-su

    • 출생 1966년 3월 8일(55세)
    • 서울특별시 성동구 모진동 (現 서울특별시 광진구 화양동)
    • 거주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산운동
    • 국적 대한민국
    • 직업 기업인
    • 현직 카카오 이사회 의장
    • 부모 아버지 김진용 어머니 한상분
    • 형제자매 2남 3녀 중 장남
    • 배우자 형미선
    • 자녀 장남 김상빈 장녀 김예빈
    • 학력 건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산업공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산업공학 / 석사)
      재산 153억 달러 (한화 약 17조 5,600억 원)

    ① 김범수 개요

    한국의 기업가입니다. 카카오 이사회 의장입니다. 2021년 현재, 그는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입니다.

    ② 김범수 생애

    그는 전라남도 담양에서 농사를 짓다가 무분별하게 서울로 이사 온 부모님 밑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김범수는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김범수는 중학교 때 아버지가 정육점 도매업에 정착할 때 작은 집을 샀지만 몇 년 만에 파산해 2학년 때 혈서를 쓰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마음이 아플때마다 손가락을 베고 혈서를 세번 썼어요... 담배를 끊기 위해 개인적으로 3개비를 사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정말 피곤할 때만 담배를 피웠다고 합니다. 1년 후에 두 개가 남았습니다.

    재수 후, 그는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입학했고 과외 아르바이트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학교에 갔습니다. 보통, 만약 여러분의 가족이 어려움에 처한다면, 여러분은 열심히 공부할 수 있지만, 여러분은 열심히 재테크를 한 것에 대한 보상과 함께 고스톱 포커 당구 게임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공부하지 않고, 4년 안에 학사 학위를, 2년 안에 대학원 석사 학위를 졸업했습니다.

    1992년에 석사 학위를 졸업한 후, 그는 삼성 데이터 시스템에 전문 연구원으로 입사했습니다. 컴퓨터 언어는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팔렸습니다. 그 해, 그는 스타일 에디터인 폼 에디터를 개발했고, 1993년, 그는 호암 미술관 컬렉션을 위한 이미지 관리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1996년 PC통신유니텔을 개발하여 유니텔 에뮬레이터 유니윈 2.0과 유니윈98의 설계 및 개발을 담당하였습니다. 문태식 마인드골프 대표이사, 김정호 전 NHN 글로벌게임사업본부장 등이 SDS에 입사해 네이버컴과 합병을 제안한 사례다.

    ③ 김범수 창업

    1990년대 말 PC방과 온라인 게임 열풍이 불자, 삼성 SDS에 재직 중이던 1998년 6월 김범수는 한양대학교 앞에 '미션 넘버원'이라는 대형 PC방을 부업으로 열었다. 법인명은 미션 엔터테인먼트. 전국 최대 규모의 PC방인 데다 그는 한 자리에서 모든 컴퓨터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개업 6개월 만에 5천만 원을 벌만큼 PC방은 승승장구했고 PC방 운영을 아내에게 맡기고는 1998년 9월 삼성 SDS를 나왔다. 김 의장은 그해 연말인 1998년 11월 강남구 삼성동에 한게임을 창업했다.

    김범수는 2000년 한게임을 삼성 SDS 동기 이해진 사장의 네이버와 합병시키고 NHN 공동대표가 된다. 2004년 NHN 단독대표를 거친 이후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대표를 맡는다. 그러다 2007년 8월 대표직을 던진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해진과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 많은 돈은 받고 네이버를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초창기 인터넷 기업이 큰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네이버는 검색 엔진과 서버에 많은 투자가 필요했고, 그 투자금은 한게임에서 번 돈으로 메꿨다.)

    그 후, 김범수는 다 털고 가족이 있던 미국으로 떠났다. 자녀들과 놀아주고 학교 데려다주면서 1년을 보냈다. 그는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다시 귀국해 음악에 빠지고, 책에 빠졌다.

    김범수는 너무 외로워서 "1년만 휴학하고 한국서 놀자"라고 미국에 있던 가족들을 설득했다. 당시에 큰 애는 고1, 둘째는 중3이었는데 '나도 재수했는데, 애들이 1년 정도 늦게 대학 가면 뭐 어떤가' 싶어서 식구끼리 여행 다니고, 당구 치고, PC방에 다녔다고 한다. 더 무서운 건 이때 애들한테 아무것도 못 하게 하고 강제로 놀게만 했다고 한다.(...) 식구 중에 딸이 게임을 별로 못했는데, 아들과 게임 고수인 아내의 지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고 한다. 그렇게 넷이서 게임을 하다 보면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PC방 주인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면 그게 정말 행복했다고...

    그렇게 가족과 놀기를 3년, iPhone이 출시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가족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카카오톡이 탄생한다. 본인이 미국에 있을 때 마침 아이폰이 출시되는 것을 보며 PC에서 모바일 시대로 옮겨갈 것을 짐작, 한창 준비하던 프로젝트를 무산시키고 위와 같은 서비스를 출시했다.

    카카오톡은 PC 메신저 일색인 시장에서 '모바일 메신저'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무료 서비스와 그룹채팅의 강점을 내세운 카카오톡은 출시 1년 만에 1,000만 명의 이용자를 모았다. 당시 카카오톡이 급속도로 성장했던 이유는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동통신사의 문자 메신저는 글자 수 제한이 있었던 건 둘째치고 별도의 통신비를 엄청 지불했어야 했다.

    카카오톡은 인터넷에 연결만 되면 글자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었고, 후에 출시한 이모티콘과 부가 기능들이 유명세에 불을 붙여 흥행을 이끌었다. 현재는 네이버의 라인과 페이스북의 메신저 등 만만치 않은 경쟁사들이 있지만 2014년까지도 경쟁사들의 성장이 더딜 때라서 김범수 의장의 시장 선점이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당시를 보면 매우 과감하고 급진적인 투자이고 사업이었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문자 메신저 또한 통신망 투자를 한 상태에서 수익원이 되는 것은 당연한데, 카카오톡은 그것을 무료로 해주었던 거. 사용자 입장에서는 문자 메신저가 공짜여서 좋기는 한데,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카오톡 입장에서는 매달 10억 원 이상의 서버 투자 비용이 계속 들어갔다. 네이버 합병으로 벌어들인 투자금이 없었다면, 시작조차 하기 어려운 사업이었다.

    김범수는 카카오톡 초창기에 단 한 푼의 수익도 없이 서버 투자로 매달 10억 원 이상씩 돈만 쓰고 있었다. 다만 SDS와 한게임 등을 통해 인터넷 사업을 영위해온 그간 경험에서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돈이 된다는 신념만을 믿고 지속적으로 투자금을 쏟아부었다. 이후 김범수 개인 돈마저 고갈되고, 카카오톡 사용자들은 메신저 렉 걸린다고 아우성이 들리는 상황이 되고, 결국 중국에서 투자금을 지원받아 지속적으로 투자를 넓힌다.

    다만 김범수의 막대한 돈, 텐센트의 투자금 계속 비용이 발생될 무렵, 카카오톡이 전 세계에서 최초로 메신저로 수익이 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어냈는데, 카카오 게임을 통해서 메신저 사업에서 수익 창출 모델을 최초로 제시하였다.

    이후로는 선물하기 기능 등등. 이후 김범수의 전략대로 인터넷에서는 사람이 모이면 돈이 된다는 이야기는 정설로 법칙처럼 되어버렸다. 카카오톡의 성공 모델을 보고, 네이버 이해진은 일본과 그 변방 국가(태국, 인도네시아 등)에 라인을 기반으로 한 메신저를 재빨리 론칭했고, 중국은 QQ를, 전 세계에서 가장 발 빠른 이스라엘 기업도 메신저 회사를 만들었으나, 페이스북이 빠르게 인수한다.

    이후 2014년 다음과 합병한다. 한때 그의 주 파트너가 경쟁사였던 네이버였음을 감안하면 합병이긴 해도 경쟁사와 인연을 맺은 것이 시대의 아이러니이다. 카카오는 처음에는 무료 서비스라 게임 업체와의 연동에 주력해 수익을 냈지만, 이후 준비했던 유료 서비스들과 카카오 뱅크 등 인터넷 은행 사업이 대대적으로 성과를 내면서 2019년, 자산총액 10조 이상의 대기업 기준을 만족하며 9년 만에 대기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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